프로그래머

나는 프로그래머들을 참 좋아한다. 이것은 동경이면서 존경이다. 내가 이들을 동경하는 이유는 이 사람들이 세계를 창조하는 직업인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하드웨어는 자연이고, 소프트웨어는 사회다. 이들은 그 사회의 건설인이면서, 입안자다. 또 내가 이들은 존경하는 이유는 이들이 이룩한 성취 때문이다. 이들이 건설한 사회는 처음엔 현실을 모방했지만, 이제는 미수에 그친 죽은 사회학자들의 '유지'를 실현하고 있다.

이를테면 오픈소스는 사회주의와 닮아있다. 사회주의가 자본의 공공성을 주장하는 것처럼 오픈소스도 지적자산의 공공성을 주장한다. 각자가 도출된 과정도 닮아있는 것을 보면, 둘의 지향점이 비슷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출현했다. 마찬가지로, 오픈소스도 자폐적인 상업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했다. 이제 오픈소스는 거역하기 어려운 시대의 요구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그 것은 소수의 공헌자에 의해 시작했지만, 그 과실은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 이것은 확실히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개발자는 현실에 대한 충실한 모방자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가장 큰 사회는 국가다. 일반적으로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입법, 행정, 사법이다. 이것은 프로그래머의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 프로그래머에게 입법은 코딩이고, 행정은 로직이며, 사법은 디버깅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코딩으로 사회를 만들고, 로직으로 운영하며, 디버깅으로 단죄한다.

또, 이들은 민주주의를 모방해, 자기들만의 사회를 고안하기도 했다. 객체지향이라고 불리는 이 사조는 중앙집권적인 절차지향에서 벗어나서, 단위 로직인 객체가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사회를 말한다. 개별적인 객체는 각자의 소명을 지니고 있으며, 주어진 소명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전체에 공헌한다. 이것의 기저에는 개인주의가 깔려있는데, 객체는 각자의 로직에 충실할 뿐, 다른 객체의 로직에 관여하지 않는다. 이러한 개인주의를 프로그래머들은 인캡슐레이션(encapsulation)이라고 부르고, 객체가 다른 객체에게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을 커플링(coupling)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한다. 인간 세계에서는 전체주의라고 부르는 이 억압은 다양성을 말살하고, 변화를 가로막는 질병이다. 고압적인 절차지향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객체지향은 처음에는 프로그래밍 스타일로 확산되다가, 객체지향 언어인 C++과 자바가 등장하면서 형식적인 완결성을 지닌 체제로 완성되었다. 물론, 현실세계에서 실질적 민주주의가 아직 요원한 것처럼, 소프트웨어의 세계에서도 실질적 객체지향은 갈 길이 바쁘다.

프로그래머들은 역사에 대한 목격자이기도 하다. 이들은 로그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로그란 시스템의 위협을 단죄하는 단서이면서, 과거의 실수와 화해하기 위한 열쇠다. 이들은 자신이 작성한 코드에 주석을 달아서 또 다른 시간에 살고 있는 또 다른 개발자를 배려하고, 사용자들의 행동을 엑세스 로그에 기록한다. 역사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활동이다. 하지만, 개발자들은 이 전통적인 역사의 범주를 벗어난다. 이들의 역사는 단순히 '성찰'하는데 그치지 않고 '복원'한다. '버전관리'라는 것이 있다. 버전이란 프로그램에서 변경점들의 의미있는 그룹을 말하는데, 이것을 로그로 저장하는 것이 버전관리다. 이 로그는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고, 관련자를 색출하며, 과거로 되돌릴 수 있게한다. 마치 스카이넷이 존코너를 없애기 위해서 과거로 터미네이터를 파견하는 것과 비슷하다. 버전관리는 타임머신이고, 존코너는 색출해야 할 버그인 샘이다.

기실 인간사회란 자연을 하드웨어로 하는, 소프트웨어다. 그런 점에서 소프트웨어는 사회를 닮아있다. 그래서 잘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는 대체로 사회를 충실하게 모방한 것이고, 소프트웨어를 들여다보면 인간사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만나본 프로그래머 중에는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그것은 이들도 사회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개발자 중에는 사회랑은 담쌓고 사는 무심한 사람들도 있는데, 아마 이들이 만들고 있는 사회는 따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자기들이 만들고 있는 사회를 건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멋쟁이들. ㅋ